2023년 7/8월 꼬레아!! 다가오는 환상에 준비되고 있는가
세계의 주도국을 국제 정치에선 이렇게 표현해왔습니다. G2, G8, G20,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디아, 중국),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영국 등 유럽 국가들), Four Tigers(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여러 나라를 묶어서 다양하게 표현해 왔습니다.
최근에 등장한 G2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미국과 중국 두 나라를 일컫는 말로 정치 경제적, 군사적 용어로도 사용됩니다. 이른 호혜적 입장에서는 세계 경제의 견인차요, 평화의 균형을 이룬 양강을 언급합니다만 자칫 균형이 깨어질 때 세계는 거대한 패권 충돌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됩니다. 이미 사무엘 헌팅턴의 경고가 있었지만 ‘문명의 충돌’을 넘어 이데올로기, 패권다툼의 현실로 드러날 조짐이 농후합니다.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정책을 천명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30여 년간 중국경제는 연평균 9.9%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왔습니다. 연 10%의 경제폭발성장을 거듭하던 중국은 G2를 넘어 G1의 야심도 숨기지 않았었습니다.
등소평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자신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뜻)는 어느덧 숨기지 않는 패권의식으로 들떠 있는 중국의 생얼을 봅니다. G2의 중국과 G3의 일본 사이에 ‘대한민국’은 길이 있을까요.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는 서방권을 중심으로 G8으로 세계질서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물량주의는 패권야심에 불을 질렀습니다. 동북공정으로 표현되는 한반도에 대한 야심은 1000년의 역사적 뿌리를 가지고 넘볼 기회를 엿보아왔던 것입니다. 국가간의 관계는 매우 냉정합니다. 힘의 논리만이 존재합니다. 혈맹, 동맹 등등은 운명적 관계이지 시혜적인 일방적 관계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소수민족 역사로 편입, 고구려 양식의 성을 중국 한족의 스타일로 리모델링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사실을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중국의 시진핑이 강력하게 주도하는 일대일로와 신장위그루, 백두산까지 고속철의 건설은 흉심이 함께 있는 인프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미 시간이 좀 지났지만, 2009년경에 GUTS라는 용어가 하나 더 추가되었습니다.
G는 Germany, U는 USA, T는 Turkey, S는 South Korea입니다. 독일, 미국, 터키에 이어 한국(GUTS), 4개의 세계강대국으로 불립니다. 부르스 존스와 토마스 라이트가 ‘Foreign Policy’에 기고한 논문에서 만들어 낸 용어입니다. Guts라는 영어 단어가 ‘용기’ ‘배짱’ ‘원기’ 등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부제를 “여기 놀라운 부흥을 향유 하고 있는 4개의 세계강대국이 있다.”라고 설명을 달고 있습니다.
국제 정치에서 이른바 ‘world power’라고 불리는 국가는 대단한 강대국이며 그렇게 불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명예로운 일입니다. 언제 우리가 국제 정치학자들에 의해 이런 평가로 불림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한국의 부상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여러 미래학자, 거시경제학자, 문명사학자들을 통해서 예견되어져 온 것은 이제 그리 새로운 얘기도 아닙니다.
물론 서서히 지는 전통강국(영국, 프랑스, 이태리, 일본)이 있고, 금융 위기를 통해 국제적인 영향력을 오히려 더 증대시키고 잘나가는 서방 국가들이 있습니다. 독일, 한국, 터키, 미국 등이 바로 그런 나라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국제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은 역설적이게도 다시 더욱 강력한 국가로 태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분석합니다.
2020년대 들어 중국의 전랑외교(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며 주변국을 압박한다는 뜻)로 대변되는 조공적 관계를 요구하는 접근방식은 아직 때를 분별 못 한 외교적 실책임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미국이 패권을 잃을 만큼 기초기술, 원천기술, 지식적 인프라, 소프트파워, 달러패권 등이 약하지 않다는 것이죠.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중국의 경제성장 속도와 지정학적 지위가 둔화 및 약화 되는 것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치고 들어온 5G통신 등 반도체 굴기에 미국은 장비수출을 제재함으로써 답보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은 중국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진핑식 경제정책은 경제논리보단 계획경제식 전형적 공산당운영방식으로 그들의 역량을 극대화하기엔 너무나 비효율적임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 속에 패권장악만이 있지, 상호호혜적인 마인드는 매우 적습니다.
선교사 2000여 명을 대량 추방하고, 기독교 탄압으로 중국공산당으로 사회 전영역을 체제 일원화하겠다는 것은 이미 공생의 가치조차 없는 일인독재를 위한 바벨탑적 구조로 모택동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듯 보입니다.
터키의 최근 경제성장률은 중국의 경제성장 비율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터키는 이슬람 민주주의의 모델이 되고 있으며 서방세계와 중동을 연계하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만 튀르키에는 에르도안의 종신집권을 열어줌으로써 경제적 정책유연성과 개방성에 약점을 갖게 되면서 이런 강력한 지위를 유지할지는 의문시 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20-50(일인당 소득 2만불, 인구 5천만) 클럽 멤버가 되었습니다.
20-50 클럽에 들어가는 나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태리, 일본뿐입니다. 저자들은 한국은 이미 고급 제품의 최종생산국이 되었고 앞으로 2~3년 이내에 일본의 일인당 국민소득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엄청난 정치 과잉은 우리에게 매우 유연한 정치적 공생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실 이 GUTS를 발표했을 때 국제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수긍하기 어려웠던 나라는 S는 South Korea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네 나라 중에서 독일과 미국에 대해서는 의문 없이 받아들였지만, 터키와 한국에 대해서는 항의와 함께 그 근거를 따졌습니다.
그러자 다음 호에 대한민국이 2040년을 이끌어갈 그 이유를 나라별로 5가지씩 실었습니다.
첫째는 한국인들의 남다른 “국민성”입니다. 한국인들의 남다른 국민성을 ‘총명함’과 ‘부지런함’과 ‘열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인들의 남다른 “교육열”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한국의 높은 “기술 수준”을 들었습니다. 과학 기술을 발전시켜 기술 한국, IT 강국이 되었다. 반도체, 가전제품, 조선, 자동차, 제철, 원자력 기술들이 세계 일류를 지적했습니다.
네 번째 이유는 700만이 넘는 한국의 해외동포의 네트워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 이유가 놀랍습니다. 한국 개신교의 역할이 세계를 이끄는 정신적, 도덕적 기반을 제공한다고 했습니다.
이 잡지는 신학 잡지가 아니라 외교잡지입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무서우리만큼 세계는 대한민국 대망론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환경, 반도체, 배터리, 조선, 건설, 가성비군사기술 등등 ‘다시스의 배’는 한반도로 향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나라에는 치열한 경쟁의 벽 때문에 좌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울부짖는 세력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세계의 들판을 보면 세계 최빈국이요 후진국이던 우리나라를 단 두 세대 만에 세계 강대국이요,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손의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위기가 기회가 된 나라가 몇이나 있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성취는 결코 우리만의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산업화를 넘어 민주화는 불가사의를 느끼게 합니다. 수많은 민주적인 실험을 통해 이 땅의 자유지수는 전 세계 언론 및 네트워크 소통의 정상급인 것도 매우 건강한 부담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존재는 사명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자유 민주 통일의 과업이 있습니다. 선교의 최대장벽인 북한은 반드시 열린 문이 됩니다. 두 교수가 지적한 교회의 영성 부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쓰시는 이유이고, 한국을 기적의 나라로 만든 사명과도 연결됩니다. 그래서 전방위적인 교회가 공격받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교회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먼저 교회지도자들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영성의 좌소인 교회가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시 기도의 불금(불타는 금요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민족교회의 1/10조를 선교사로 파송하는 선교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는 예산의 20%를 선교비로 책정하는 위대한 구조변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박인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