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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대한민국, 패권국으로의 비상 가능할까

  • 최성훈
  • 조회 : 99
  • 2024.08.29 오후 02:08

패권이란 말은 좋은 의미로 쓰기가 어렵다
제국주의의 역사와 함께 한 그야말로 양육강식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세계 역사에서 식민지 경영이란 국익을 극대화하는 한 방편이 되어 처절한 인권유린이 있었음에도 자국의 이익이란 논리로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패권국은 낭만적 선악의 개념을 넘어 이 세상질서의 불가결한 위계가 된다.
마치 한반도가 미소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양분되어 온 것 처럼 세계는 요리 되어 온 것이다.
미국의 필리핀 독립저지학살, 벨기에의 아프리카에서의 천만명학살, 스페인의 엄청난 남미 및 쿠바에서의 대량학살 등 명분 배후엔 냉엄한 힘의 논리가 숨쉬고 있다.
영국의 아프리카의 대규모 인신매매를 어찌 간과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패권을 갖는 한 나라는 식민지의 부를 독점한다.이것을 헤게모니라고도 부른다. 압도적 지배력을 행사하는 나라, 혹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나라를 패권국가라고 한다

지금도 정글 같은 세상에서는 패권국을 향한 치열한 각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물론 아직까지 대서양과 태평양을 지배하는 미국이 그 패권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 영역에서 만만치 않는 소강국들의 선전을 보게 된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의 ASML은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세계에서 독점 생산한다. 

네덜란드는 한반도 면적의 5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다. 인구 1761만 명, 1인당 국민소득은 64,000불이다. 오직 강소국의 실력으로 지금도 일정부분 갑의 위치에서 소비국들을 호령한다.
그들은 생산국의 위치에서 소비자에게 갑이 되는  반도체장비 패권국이 되었다. 


현재도 네델란드는 역사상 최초로 노동자의 식탁까지 풍요로운‘전 국민이 다 함께 잘사는 나라’이다.

 20세기 초부터 정치적 안정, 사회보장체제의 자율성, 능동적인 노동시장 정책을 시행하여 성공한 모델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배워야 할 대목들이다.

패권국! 불가피하게 세계질서의 한 산물이다.
패권국이 될 것인가, 식민지가 될 것인가의 치열한 싸움이 지금도 정치, 경제, 군사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패권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국가 간 체제의 게임의 룰을 확립한다. 그리고 생산 · 상업 · 금융 분야 등의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


미국의 예일대학의 임마누엘 윌러스틴 교수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저서에서 '세계 역사상 3대 패권국가'로 20세기의 미국, 19세기 영국과 함께 17세기 네덜란드를 꼽았다.

그렇다. 역사상 헤게모니를 달성한 첫 번째 사례는 17세기 중반의 연합 주(오늘날의 네덜란드)였고,
 
두 번째는 19세기 중반의 대영제국

그리고 세 번째는 20세기 중반의 미합중국이다.

세 경우 모두 패권은 경제력과 정치력, 군사력의 집중으로 치열한 수싸움과 경쟁 끝에 나온 팽창의 결과다.

 떠오르는 패권자는 처음에는 산업에서, 다음에는 상업에서, 그 다음에는 금융에서 결정적 우위를 쥔다. 

하지만 패권이 공고해지는 것은 대략 30년에 걸친 세계 전쟁의 승리를 통해서다. 
1618~48년의 30년 전쟁(네덜란드 패권의 성립)과 1792~1815년의 나폴레옹전쟁(영국), 
1914~45년의 1·2차 세계대전을 포함한 ‘긴 유라시아 전쟁들’(미국)이 그것이다.



여기서 세계의 패권국은 전능자의 주권 속에서 해석해야 하리라고 본다.
페르시아나 바벨론이나 애굽이나 본래적 용도가 있었던 것이다.

무려 1500년 가까이 패권을 유지한 로마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결국 이 세상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한 면을 우리는 주지하고 있다.

이 패권 배후에 이 세상을 구원할 통로로 복음의 루트가 사용되어 온 것이 특별한 섭리이다.

 패권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패권국은 결국 선교의 도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패권의 대열에 올리워지는 순간 선교적 하이웨이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미전도종족이 가득찬 인도, 중국, 몽골, 중앙아시아..
대한민국은 발판이 된다.



패권국가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세계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국가'라고 그는 정의할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나라 강소국에서 패권국으로 등장한 한 나라를 주목해봐야 한다.
바로 네델란드.
17세기 네덜란드는 그 정도로 막강한 나라였다.
그런데 당시 네덜란드는 강대국이 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 

국토의 4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아, 농경시대에는 살기 힘든 땅이었다. 비가 오면 빗물이 빠져나가지 못해 사람들은 '클룸펜'이라는 나막신을 신었고, 풍차로 물을 퍼내야만 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 '물과의 전쟁'이 기업가 정신을 만들어내는 뿌리가 됐다.

지리적으로는 프랑스와 독일 등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고난의 연속이었다.

특히 16세기에는 스페인의 지배 하에서 핍박을 받았다. 칼벵의 종교개혁을 받아들여 개신교가 다수였던 네덜란드 북부는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한 스페인 왕실의 타깃이 됐다. 
스페인 필리페2세는 네덜란드에 가혹한 세금을 물렸다.
마침내 1581년 북부 7개 주는 독립을 선언하고,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영국과 힘을 합쳐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스페인을 물리쳤다. 1648년 마침내 80년 동안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끝냈다.
네덜란드는 '독립하자마자 강대국'이 됐다. 

스페인, 포르투갈을 제치고 '세계 해상무역의 패자'가 됐고, 지금의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 하는 등 곳곳을 지배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네덜란드는 독립하기 훨씬 전부터 해상무역이 발달한 나라였다. 당시 '유럽에서 선박이 가장 많은 국가'이기도 했다.

대항해의 시대, 동양과의 해상무역은 엄청난 이익이 보장되는 것이었지만, 위험 또한 그만큼 컸다. 
후추, 비단, 도자기 등 동양의 진귀한 상품을 실은 배가 무사히 돌아오면 투자자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출항한 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엄청난 도박'이었다. 

또 대양 항해에 필요한 선박을 건조하고, '반쯤은 군인'인 선원들을 모집하며, 대포들을 배에 실었다. 이 일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모험가들은 왕실의 지원에 의존해야만 했다.

네덜란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묘안을 찾아냈다. 
바로 '주식회사 제도의 발명'이었다.
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모아 기업을 설립하고, '이익과 위험을 공유한다'는 생각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이 혁명적인 발상은 근.현대 기업들의 기본철학이 됐다. 
이렇게 설립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의 글로벌 기업'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네덜란드의 발흥에는 '유대인들이 큰 몫'을 했다.
스페인의 추방령으로 쫓겨난 유대인들이 향한 곳이 바로 네덜란드였다. 네델란드의 안트베르펜의 경우, 한때 도시인구의 절반이 유대인일 정도였다.

동인도회사 주주의 절반도 유대인이었다.
여기서 이들에게 새로운 발흥의 DNA역할을 한 사람들은 위그노들이다.

영국에서 박해받아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로 이주한 사람들을 청교도라 말한다.
 반면 프랑스에서 박해를 받아 유럽을 중심으로 흩어진 개신교도를 위그노라 말한다. 

위그노의 이주가 역사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가진 종교적 신념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기술자이자 엔지니어들이었기 때문이다.

개신교도인 위그노들 대부분은 젊은 지식인들이 주류였다. 그들은 투철한 신앙과 직업의식과 함께 상공업을 중시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일찌감치 제철, 염료, 화학, 정밀기계 등, 첨단 기술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었다.

이모든 위그노들은 사실 프랑스에서 살던 사람들었다.
그러나 종교적 기득권에 매였던 프랑스는 결국 '퐁텐플로 칙령'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퐁텐블로 칙령(Edict of Fontainebleau)'은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1685년 10월 22일에 반포한 칙령으로 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 주요내용이다. 
루이 14세는 교황청의 지지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이 칙령을 발표했다.

이것은 루이 14세의 왕권 강화에 도움을 주고 가톨릭 국가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프랑스 경제에는 결정적인 타격을 줬다. 
1598년에 낭트 칙령를 무력화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큰 퇴행을 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개신교도들에게 주었던 자유를 수거하고,  더 탄압하는 인본주의 왕국으로 만든 결정적 사건이 되었다.

이번 올림픽개막식을 보라!
프랑스의 문화 엘리트의 머리 속에 가득찬 '적그리스도적 사상'을 보고 있는가.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프랑스에 내려오는 68동성애,소아성애,계약결혼으로 가족제도의 해체 등 인본주의 영의 산물들이다.

프랑스의 이 퐁텐블로 칙령으로 20만~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위그노가 프랑스를 떠났다. 
루이 14세 본인이 1686년 1월 17일 “80만~90만 명의 위그노 중에서 지금 프랑스에 남은 자는 1000~1500명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기록이 있을 정도다. 

이 결과 프랑스는 경제 발전에 결정적 성장점을 잃는다.
그들은 인력이 부족할 정도로 경직된 종교국가로 스스로 올무가 된다. 이로 인해 국가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내팽겨쳐 버리게 된다.


이 위그노들이 독일로, 네델란드로 또 여기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세계 패권국의 산업적, 종교적 DNA가 된 것이다.

특히 네덜란드로 이주한 위그노들은 대략 65,000여 명으로 200여 명 개신교 목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미 네덜란드는 1492년 이후 스페인에서 이슬람 세력과 함께 추방된 유대인들을 대거 받아들인 바 있다. 이들은 무역, 금융, 해운, 보석가공업 등을 발전시킨 경험자들이었다.

네덜란드는 위그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등, 독일과 같이 프랑스어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예배당까지 제공하여 위그노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네덜란드는 해양 기술을 가진 위그노들이 몰려들자 날개를 단 듯 무역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제치고 17세기 동방 무역의 선두 주자로 발돋움하게 된다.

나아가 1687년 네덜란드가 속령인 남아프리카로 이주민을 정착시킬 때에 위그노들이 집단으로 이주하였으며, 그들은 그곳에서 각종 산업은 물론 특히 포도 재배를 통해 정착하였다. 그들이 바로 오늘의 남아공 와인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종교적인 박해를 피해 유럽 곳곳에 흩어진 위그노들 덕분에 당시 기술 후진국이었던 독일은 프랑스를 추월하여 기술 강국의 반열에 올랐다.
 네덜란드는 무역 강국을 이루었다.
 스위스는 시계와 금융 산업 등 근대공업의 기반을 다졌다

그러자 열린 영국도 특별법을 만들어 위그노들을 받아들였다.
영국은 베르사유 가구 제작자, 방직업자, 은세공업자, 기계 제작자, 시계공, 실크 디자이너 등 많은 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였다. 
영국은 위그노들이 가진 증기기관 기술과 면방직 공업의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쫓아낸 것이었다.
위그노들이 가는 곳마다 유럽은 깨어났고, 새로운 혁신 산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네덜란드를 '금융업의 중심 국가'로 만들었다.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민간은행인 암스테르담 은행은 '세계 최초의 기축통화'인 지폐를 만들어 낸 은행이다. 
당시 유럽에는 금속으로 만든 주화가 1000개가 넘었기에, 표준이 되는 통화가 필요했고, 암스테르담 은행이 세계 최초로 지폐를 대량 유통시켜 '거래비용'을 없앴다.

지폐는 금화나 은화보다 만드는 비용이 훨씬 덜 들고, 운송도 쉽다. 네덜란드가 패권국가가 되는 데 금융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신용을 목숨보다 중시'한 네덜란드인들의 정신이다.



다가올 1백 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안보·국제 전문 분석기관 ‘싱크탱크 스트랫포’의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한 조지 프리드먼이 ‘향후 1백 년’을 예측했다.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로 불리는 그는 그간의 정세 분석 노하우와 다양한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1백 년간의 미래 세계를 예측한 <100년 후>를 출간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중요한 국가로 여기지만 중국은 시베리아와 히말라야, 정글, 고원, 사막 등에 막혀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게다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해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벌써 그 한계점에 근접해 있다고 지적한다.

프리드먼은 일본과 터키, 폴란드를 ‘떠오르는 신흥 강국’으로 예상한다. 일본은 원자재 수입 의존율이 높지만 취약점을 보완하는 정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았고, 터키는 세계 17위 경제대국이자 지정학적 위치가 좋아 앞으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닐 것으로 분석했다. 
폴란드는 러시아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이 지원해 예전 같은 강대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프리드먼은 2030년 이전에 한국이 통일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 한국의 인구는 7천만명으로 일본에 비해 그리 적지 않고 현재 세계 12위의 경제 위상은 통일 후 더욱 상승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특성상 일본, 중국, 러시아의 중간에 갇힐 수도 있고, 미국에게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평행추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나라를 벤치마킹할 것인가?
지금도 네덜란드는 강력한 이민정책을 통해 전 세계의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20년 전부터 고급 인력에게는 비자 발급과 체류 조건을 완화하고 소득공제율 30%를 적용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 정책이 있다. 
전체 인구에서 4명 중 1명이 외국인이며, NXP 네덜란드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국적은 60개가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네델란드보다 환경이 더 어려웠으면 더 어려웠지 더 편한 나라는 아니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750만명이 이민간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 잖는가.
없어서, 강제로, 눈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75년의 남북의 긴장 속에서 군비생산 세계최고의 양산 및 가성비를 자랑하고, 미.러의 기술을 빨아들여 최고수준의 무기를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애초부터 일본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길 곧 수출주도정책이 그것이다.
수출만이 살길이다.
내수로는 살 수 없어 처음부터 클로벌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몸부림해 온 것.
이것이 우리의 경쟁력이다.

이제 통일한국의 미래가 보인다.
열방선교를 위해 마지막 피흘림 없는 통일과 강력한 군사, 경제, 문화력으로 세계에 길이 될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
하나님의 손길은 놀랍다.
선교한국의 비전을 위해 우리를 열방의 스탠다드 국가로 세울 것인가
핵심은 동성애를 막고, 교회가 교회되고 성도가 성도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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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패권국으로의 비상 가능할까
  •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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