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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 되게 하라

  • 최성훈
  • 조회 : 75
  • 2024.02.06 오후 09:11

다시 6.25를 맞습니다. 폐허를 딛고 일어난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 정체성을 한번 더 돌아봐야 합니다. 이제 자유대한민국을 수십 번 외치는 새 대통령이 취임하게 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서 다시 묻게 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이전에 우리나라는 불행했고 가난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에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거나, 방어와 수세에 급급하며 살아왔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말은 국제사회에서 힘이 없는 민족이란 말과 동의어였습니다.

열강의 대제국의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버텨온 것은 은혜입니다. 뿌리 깊은 샤먼의 나라에서 한과 음습한 비명이 이 산하를 덮었던 무당의 나라에서, 불교와 유교 신앙은 몽환적 이생도피적 사상을 더 깊게 만들었고, 그 결과 생존투쟁 무력화에 일조했습니다. 유교의 조상신 숭배는 귀신문화를 가정까지 초대, 가정에 신바람을 일으키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이 땅은 사화와 음모, 술수가 늘 저류로 흘렀고, 세종 대를 제외하곤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적이 많았습니다.

근대에 이르러 일본의 야수의 손길이 미치려는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나라에 긍휼을 베푸십니다. 돌보는 이 없는 버려진 땅에 미국, 영국, 호주 등 선교사를 이 나라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 선교사들에 의해 장차 대한민국의 독립을 준비할 인재가 길러집니다. 무엇보다 진리의 빛이 이 땅에 비췹니다. 비로소 이 백성들이 개안하며 성령을 체험한 리더십의 등장으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그가 바로 이승만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승만의 공과는 역사에서 균형있게 평가되어야 합니다. 암담한 시기에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체계를 받아들이고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태동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신생독립국가가 되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이런 절대 빈곤국이 선진국에 진입할 뿐만 아니라, 세계 기술선도국으로 진입한 것은 무엇으로도 설명이 불가한 기적입니다. 우리는 근현대사에서 두 번의 걸쳐 국가 소멸의 위기를 경험합니다.

하나는 일제의 탄압과 병합이고 하나는 동족상잔의 6.25사변입니다. 이런 국난의 위기, 모두 우리 힘으로 이것을 극복해낸 것이 아닙니다. 이른바 6.25사변은 하나님의 징계이자, 하나님을 체험하게 한 기적입니다. 대한민국을 다시 요단강을 건너게 해서, 하나님의 연출에 따라 세워진 거룩한 새 디자인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6.25 전쟁에 나타난 기적들이 그 증거입니다. 김일성 군대 12만 명과 소련이 제공한 탱크 246, 중공의 후원을 앞세워 선전포고 없이 침공합니다. 100%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가지 기적이 대한민국의 초석을 이룹니다.

첫째, UN군의 신속한 참전이 기적입니다. 미군을 위시한 UN군의 신속한 참전은 상식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기적이었습니다. 유엔 기구 중에는 5개국 안전보장위원회에는 만장일치제입니다. 그런데 이 이사국 회의에 소련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다른 4나라 대표들이 유엔 참전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남침 중인 인민군대가 서울에서 3일간 머문 것이 기적입니다.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한 인민군이 3일간 서울에서 머물며 남쪽에서 남로당이 일어날 것을 기대하고, 3일간 머뭅니다. 이 골든타임 기간 군대를 정비하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주일미군이 파병될 수 있었던 점입니다.

셋째, 공산화가 될 뻔한 남한에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세워진 것이 기적입니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 통치가 끝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3년간의 미군정을 합니다. 이때 여론조사를 합니다. 앞으로 세워질 신생 독립 국가 대한민국이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를 택할 것인가를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국민 78%가 공산주의 국가를 택하였습니다. 이에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은 무려 일백만에 가까운 당원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 힘을 믿고 박헌영은 인민공화국 설립을 선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군정 당국은 유엔 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하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방안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박헌영 진영에서 백만에 이르는 당을 관리 운영하기에 자금의 압박을 받자 위조지폐를 찍었습니다. 당국은 위폐범 12명을 조사 결과 그들 모두가 공산당의 열성 당원임이 드러나고 그 배후에 박헌영이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민심이 공산당 지지에서 떠났습니다. 그리고 박헌영에 대한 체포령이 내려지자 북한으로 도피하였습니다.

그리고 건국 후 UN 총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1948.12월 파리 UN 총회에서 한국의 건국 승인 안건이 올라가기만 하면 이른바 공산 국가들이 필리버스터로 안건상정을 방해합니다. 이때 연설하던 소련 대표가 갑자기 목에 결절이 발병, 숨을 헐떡이며 말을 못 하게 되어 병원으로 긴급후송하게 됩니다.

이틈을 이용하여 사회자가 대한민국 건국 안을 상정하여 찬성 48. 반대6. 기권 1(스위스)로 대한민국 건국 승안이 가결, 정식 UN 회원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넷째, 인천 상륙 작전 성공이 기적입니다. 인천항의 조건이 여러 가지로 상륙에 부적합하다는 반대였습니다. 첫째는 좁고 구불구불한 수로 때문입니다. 둘째는 한정된 진입로 때문입니다. 셋째는 인천의 조석의 차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점입니다. 넷째는 인천은 큰 함정이 상륙하기에 적합한 해안이 없는 점이었습니다. 다섯째는 요새화되어 있는 월미도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적처럼 성공, 불리하기만 하던 전세를 단번에 전환시켜 승기를 잡았습니다.

다섯째, 남로당 서울시당 홍민표 위원장의 전향과 자수가 기적입니다. 그가 북으로 도피한 박헌영의 뒤를 이어 남로당 총책이 됩니다. 그는 494월 홍민표에게 2천만 원을 주며 수류탄 일만 개로 서울시 6만 당원으로 폭동을 일으켜 920일에 인민공화국을 위한 총선거를 하도록 지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계획이 승산이 없음을 알고 반대하다가 결국은 홍위원장이 자수하게 되었습니다. 자수한 후 서울시당 소속 16명의 핵심 간부들을 설득하여 전향케 하였습니다. 그후 무려 33만 당원이 자수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남한의 공산당 활동은 거의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여섯째, 흥남 철수 작전이 기적입니다. 철수 당시 마지막 남은 상선이었던 빅토리호는 탈 수 있는 정원이 고작 60명인 작은 배였습니다. 그러나 피난민들을 버려둘 수 없어 화물을 버리고 태웠습니다. 그 작은 배에 만 명 가까이 태우고 흥남항을 떠났습니다. 일곱째, 반공 포로 석방과 한미군사 동맹이 기적입니다. 휴전회담 중 유엔군 측은 자유 송환을 주장하였고 공산군 측은 강제 송환을 주장하였습니다. 17만이 넘는 포로 중에서 7만 명은 송환을 원하고 10만여 명은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 포로들이었습니다. 휴전 회담이 대한민국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세계가 놀라는 반공포로석방이란 결단을 단행하였습니다. 이런 결단의 결과로 놀란 미국이 한미군사동맹이 체결되게 되었습니다.

 

-박인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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