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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열린 가슴으로 세계사의 주도성을 가져라

  • 편집부
  • 조회 : 2327
  • 2015.07.26 오전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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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성취와 현대의 대한민국이 잘못한 것보다 잘한 것이 훨씬 많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입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한국인의 자긍코드를 자극하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평균 IQ 105를 넘는 유일한 나라, 일하는 시간 세계 2, 평균 노는 시간 세계 3위인 잠 없는 나라, 문맹률 1% 미만인 유일한 나라, 미국과 제대로 전쟁이 났을 때 3일 이상 버틸 수 있는 8개국 중 하나, 노약자 보호석이 있는 5개국 중 하나인 나라,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을 얕보는 나라, 여성부가 존재하는 유일한 나라, 음악수준이 가장 빠르게 발전한 나라, 기름 한 방울 안 나면서 자동차수 2천만 대인 나라, 문자 없는 나라들에게 UN이 제공한 문자인 한글의 나라, 가장 단기간에 IMF를 극복해서 세계를 경악시킨 나라, 유럽 통계 세계 여자 미모순위 1위인 나라, 세계 4대강국을 모두 우습게 아는 배짱 있는 나라, 인터넷 TV, 초고속 통신망이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 한글 24개 문자로 11,000개의 소리를 표현해서 일본 300, 중국 400개에 불과한 나라를 압도하는 나라, 세계 각국의 유수대학의 우등생 자리를 휩쓰는 나라, 유대인을 게으름뱅이로 보이게 만드는 유일한 나라, 세계 경제력 9위 군사력 6위의 나라,

자랑스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장래의 어두운 그림자가 감도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 위해 다시 조선의 어두운 모습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레토릭이 힘을 얻는 것은 요즘의 상황과 비슷하게 오버랩 되는 것 때문이 아닐까요?

비숍이라는 영국의 여인이 조선 땅을 밟았습니다. 일본을 거쳐 온 조선의 모습은 그의 눈에 불결하고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관료들의 부패였습니다. 그는 이러고도 나라가 멸망하지 않은 것이 희한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목격한 몇 되지 않는 외국의 여행자로서 이 나라의 운명에 대하여 매우 비관적인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비숍은 조선을 떠나 시베리아 한인촌을  찾아본 뒤로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조선의 노동 의지와 생산성은 그토록 낮은가. 그것은 조선 사람들이 애초부터 게으른 족속이기 때문은 아니라는 겁니다. 결론은 부패한 관리의 수탈 때문으로 진단했습니다. 다수의 민중들에게 뼈 빠지게 일한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체념이 끝내 한국인을 가난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한국인은 밖에 나가면 더 잘사는 민족이라고 그는 새롭게 보았습니다.

 

황병무 국방대학교 명예교수는 유사 이래 지구상에는 14500회의 전쟁이 있었고 36억 명이 죽었음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그 숱한 전쟁과 참화를 겪으면서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이 없었던 순간은 모두 합쳐도 230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지구상에서 전쟁의 총성이 멎었던 순간은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그 숱한 전화(戰禍)를 겪는 세계사를 살아오면서 우리는 동북아의 고립된 성을 쌓고 고집스럽게 문민우위의 원칙을 지키려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을 깊이 돌아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유교문화에 젖어 변화에 대응할 의지조차 상실한 길들여진 코끼리 같은 민족이 되었던 것입니다.

 

조선왕조를 통하여 무관이 병조판서였던 일이 없고, 윤관·서희·김부식·김종서를 비롯한 토벌사령관은 모두 문관이었다는 것은 매우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무관을 경시하고, 문관이 전장을 지휘하게 한 것이야 말로 코미디 같은 유교가 씌워준 수건입니다.

조선왕조에도 앞선 문물인 서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기회는 있었습니다. 1653년 네덜란드의 하멜 일행이 표류하여 도착했을 때 매우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그들에게서 서양기술을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표착하자 주민들이 몰려들어 먼저 한 일은 쇠붙이를 얻으려고 배를 태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문명 탐구에 대한 호기심은 없었습니다. 표류객 가운데에는 항해·제철·총포·화약·의학 등 온갖 기술자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의 문명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가 효종의 북벌 준비 기간이었고, 그들이 훈련대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이미 표착해 있던 월터 브레가 살아 있어 의사소통이 가능했음에도 병기 기술을 배우려 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한탄스러운 대목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한 일은 사대부 집에 불러 인간원숭이 놀이를 하거나 병영의 풀을 뽑고 도자기 가마에서 불을 지피는 것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유아독존적 세계관에 갇힌 그들은 건너편 역사의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똑같은 서양표착선을 맞은 일본은 그들로부터 서양의 과학문명을 받아들입니다. 이른바 난학을 이뤄 임란의 지배자가 됩니다. 그 사이 세계의 흐름에 무딘 우리에게 조선의 명장 신립장군마저 조총의 위력을 모르고 기마병으로만 대하다 전멸한 것입니다.

해군 제독으로서의 마한이 해상권을 주장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아프리카에서 탱크전의 신화를 남긴 영국의 몽고메리원수가 결국 모든 역사에서 바다를 장악한 나라가 우세를 차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세계의 정복자 한니발의 17년에 걸친 승리와 나폴레옹의 16년의 승리도 해전에서의 패배가 있자 모든 승리는 공허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은 세계사의 교훈입니다. 그럼에도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줄곧 뱃사람에 대해 뱃놈으로 비하해왔습니다. 경상감사 이언적이 우병사 김질과 함께 배를 타고 김해로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식이란 자가 그 말을 듣고서 감사가 어찌 무지한 무부와 더불어 같은 배를 탈 수 있겠는가?라고 질책했다는 겁니다. 이 고사는 그대로 우리의 해양의식을 보여주는 조선 리더십의 세계관입니다. 농경적 지배계급으로서는 거칠고 순종하지 않는 기질의 바닷사람들을 싫어하고 버겁게 여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청나라가 세계의 굴지의 나라이면서도 선단이 발전하지 못해 소선단인 영국에 참패한 것은 역사의 강렬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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