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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통찰력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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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3 오후 05:2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력은 어떤 것일까요?

당신은 누군가의 속셈을 알아낼 수 있습니까? 자기 일의 미래를 통찰할 수 있습니까? 세상 뉴스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행동을 간파할 수 있습니까? 자녀들에게 최상의 교육으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까?

통찰하지 않은 채로 인생을 살다 보면 시간을 낭비하는일이 생깁니다. 통찰력이란 올바르게 본질을 간파하는 능력을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무턱대고 위인들의 얘기를 따라간다고 통찰력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존 맥스웰은 말합니다. 영리한 리더들은 들은 것의 반만 믿는다. 하지만 통찰력 있는 리더들은 믿어야 할 그 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통찰력을 키우고자하는 사람은 직관력, 종합력을 키워야 합니다. 왜 역사에서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눌까요? 고대에는 고대식으로 생각하는 틀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살던 기간이고, 중세에는 중세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모여 살던 기간이며, 근대 내지는 현대도 근대나 현대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산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시기에 따라 각기 달라지는 생각의 틀을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이 생각의 틀에 따라 모든 중요한 것이 달라지고 삶의 의미도 달라지고 제도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보면. 서양 역사에서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진입한 것을 알리는 중요한 선언이 있습니다. 바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주장입니다. 이 선언이 어떻게 인간이 중세에서 벗어나 근대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르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데카르트 이전의 사람들은 인간이 존재하는 근거를 신에게서 찾았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는 우리가 존재하는 근거가 더 이상 신에게 있지 않고 인간이 생각한다는, 바로 이 사실에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눌렸던 인간 사고의 획기적 지평을 여니 세계관이 달라진 것이죠.

신앙도 굳어버린 도그마가 되면 생명을 잃고 하나의 굴레에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중세는 보여줍니다. 인도의 카스트제도처럼 처절한 계급으로 누르는 곳에서 혁신과 신흥 스타트업은 나오기 힘듭니다.

요즘 대기업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건 자기들의 생존 때문입니다. 새로운 인류, 새로운 시대,

새로운 미래에 맞춰가는 데 이익을 창출해줄 사람의 세계관 이해가 절실해진 것입니다. 문제는 세계관은 변한다는 것. 그래서 그 변화하는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원리와 결과를 낳은 인문학의 역사를 들여다봐야 다음의 예측 가능성이 보입니다. 인문학엔 사람들의 경향성이 있기에 다음을 예측하기 위해 기웃거리는 겁니다. 이걸 찾는 사람도 자신의 통찰력의 빈곤을 채워줄 그 무엇을 찾은 작은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세계관 형성에 역설적이게도 살기 위해 절박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상인이나 기업에 의해 영향을 크게 받습니다. 신대륙발견도 먹고 살기 위함이고, 식민지 건설,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등장도 더 잘, 더 많이 먹기 위해서 움직인 욕망의 해류인 것입니다. 그래서 통찰력에 대해 기업만큼 예민한 곳이 없습니다. 소비자의 취향변화로 한순간에 기업의 생사고락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직업에서 보기 힘든 지속적인 긴장감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 민감하게 발달한 고도의 센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래서 진지하고 결정이 빠릅니다. 트렌드는 고기떼를 추격하는 어선과 같기 때문에 놓치면 텅 빈 배로 회항할 수밖에 없기 태문입니다.

여기에 정치지도자의 통찰력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른바 블루오션의 더 풍성하고 더 익사이팅한 세계를 항해하게 합니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에서 이집트의 대통령이었던 사다트의 행보는 매우 큰 주목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유명한 6일 전쟁을 통해 시나이반도를 통째로 점령합니다. 전 중동의 세력권을 한 번에 재편하고 중동을 화약고로 만들어 버립니다. 큰 승리와 핵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은 방심으로 전쟁기미를 무시합니다.

안와르 사다트(1918~81)는 바로 이 시점에 이른바 평화를 위한 제한전쟁으로 기습합니다. 지난번 패배를 복기에 복기를 거듭하여 물대포로 시나이반도 모래방어벽을 뚫어버립니다. 기막힌 전술이었습니다. 그리고 8만의 특수부대로 상륙에 성공하여 이스라엘에 지대한 타격을 입힙니다. 이스라엘의 기적적인 6일 전쟁의 신화는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기울기의 이론을 확증시켜 줍니다. 그의 삶의 절정은 10월 전쟁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그 삶의 절정의 주제를 평화로 바꾸는데 성공합니다.

그런 전환은 용기와 통찰력으로 가능해집니다. 전직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는 이렇게 회고(2000년 미국 메릴랜드대학 연설)했다. 사다트는 평화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거의 예언자적 비전을 가졌다. 그는 유연했지만 거칠었다.고 회상합니다. 다시 말해 전쟁을 결심해서 평화를 얻는데 성공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 중에 승승장구하다가 한순간의 잘못된 통찰력으로 종말을 고한 사례도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 나가기 전에 방심과 오만적 판단으로 그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자네들에게 미리 말하지만, 웰링턴은 형편없는 장군이며, 영국 군인들은 오합지졸이다.통찰력은 오만도 아니고 을의 자세에서 배우는 자의 자세를 가진 자만의 것입니다. 교만은 본질을 보는 눈을 가려 버립니다. 결국 1815년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이며 여기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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