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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관리자
  • 조회 : 1494
  • 2021.02.07 오후 05:36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하략>

 이상화의 시입니다. 지금은 코비드 계엄령이 이 땅을 옥죄고 있습니다. 2020년은 우리에게 4계절은 타계의 시절이었습니다. 봄이 왔으되 봄을 맞이하지 못했고, 여름이 왔으나 서늘한 겨울로 지냈으며, 가을이 왔으나 떨어지는 생명을 보며 교감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무는 한 해를 맞는 우리는 코비드의 터널에 갇혀있습니다. 이상화가 보았던 빼앗긴 들은 그가 살았던 대구의 어떤 들녘이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소꿉장난하며, 친구들과 전쟁놀이하며 내질러 달렸던 그의 들판은 어머니 요람처럼 그의 내음이 짙게 밴 곳이리라. 그가 바라본 1929년의 들판은 여전히 춥고, 어둡고, 미래가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 ‘잃어버린 시기’에 사람들은 독립을 ‘갈망’했습니다.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도 절박한 독립의 갈망이었습니다. 갈망은 전능자를 움직입니다. 소원은 수여자에게 동기를 부여해 줍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공허한 허언이 아닙니다. 그 동토의 땅에 꿈을 꾼 자들로 가득 채워질 때 ‘하늘’을 움직였습니다. 그 땅에 봄은 왔습니다. 자력갱생하여 얻은 땅이 아닙니다. 그들이 한 것은 꿈을 꾼 것 뿐입니다. 절박한 비애를 품고, 생명의 회귀를 하는 연어처럼 내 부름받은 땅, 내가 딛고 서서 보아야 할 바로 그땅에 신음하듯 소망을 쏘아 올린 것 뿐입니다. 우리 시대 사상초유의 코로나 기습은 모든 이의 일상을 빼앗았습니다. 아무도 의미를 크게 두지 않고 당연으로 여겼던 것을 ‘의미’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이의 가슴 속에 ‘갈망’이란 선물을 안겼습니다. 여행을 갈망하고, 마음껏 만나는 교제를 갈망하고, 광장을 갈망하고, 마스크 없는 대면을 갈망하고, 밀접한 대화를 갈망하고. ‘갈망’이 없으면 인류의 문명은 정지됩니다. 그런 면에서 갈망 자체가 에너지입니다. 현대인의 질병은 ‘진정한 갈망’을 잃어버린 데 있습니다. 성취에 배부르고, 물질에 배부르며 진정한 가치에 대해 갈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겐 허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 잠언 27장 7절은 이런 인생을 잘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 그러나 모든 갈망이 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에 이르는 갈망도 있습니다. 한 여행객이 해안지방을 지나가다가 많은 갈매기가 모래사장에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는 청정했으며 갈매기들이 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기에 분명 예사로운 죽음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행객은 죽은 갈매기를 치우고 있는 한 노인에게 죽음의 원인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곳은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해마다 여행객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그 사람들은 갈매기들에게 과자와 사탕 등 먹이를 많이 주지요. 하지만 그것은 갈매기들에게 해로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그렇게 맛있는 먹이들을 받아먹다가 결국 저도 모르게 자연 먹이에 대한 맛을 잃어버리게 된답니다. 그리고 철이 지나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바다 속에 있는 수많은 자연 먹이를 놔두고도, 여행객들이 주는 과자와 사탕을 기다리다 결국은 굶어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질병을 관리하는 진정한 손이십니다. 그분이 아직 끝장내지 아니한 이유를 조용히 물어야 합니다. 그것은 이제 유한한 갈망에서 영원한 갈망으로 사람답게 살아보라는 ‘하나님 갈망’이 이 코비드에 숨겨져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을 보라. 바울은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어서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묘사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거룩한 갈망을 상실한 세대는 이 땅에 살려둘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코비드는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갈망하라’란 메시지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7절에 나오는 탕자 얘기에 한번 귀기울여 보세요.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주려 죽는구나’ 이 상황에 처했을 때 탕자가 비로소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갈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배고팠을 때 그는 쥐엄열매를 찾았습니다. 아버지로 돌아가야겠다는 열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려 죽게 되었을 때, 그는 아버지를 찾은 것입니다. 그냥 한번 돌아가 볼까가 아니라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느낀 갈망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진정한 치료자이신 그분을 찾기까지 코비드 터널에 갇히게 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갈망조차 할 수 없는 날이 이르기 전에 지금 진정한 것을 갈망해 보십시오. 그분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5장 6절 보세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마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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