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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용서는 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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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09.15 오전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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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에 가면 “야드 바심”이란 유명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히브리 말로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이 기념관은 1939년부터 1945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독일의 히틀러에 의해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들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입니다. 이 기념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용서는 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세월이 흘러 혹시 유대인들이 잊어버릴까봐 당시의 처참했던 모습들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용서는 하자 그러나 잊지는 말자”

700만가까운 유대인의 학살은 있어서도 안되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처절한 재앙이었습니다. 상처라는 말로 담을 수 없는 온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용서'라는 말이 나온 것은 참으로 가상한 결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사실 이런 상처의 문제는 왈가왈부할 수 없는 표현 이상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 라고 합니다.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는 것을 용납지 말자 라는 뜻입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을 잊지 말자는 겁니다.

캄보디아에 가서 폴포트 정권 하에서 죽은 식구들을 보면서 잊으라고 권한다면 그것은 상처입니다. 자칫 상처는 환부를 덧나게 해서 건강한 세포까지도 썩게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1950년에 일어난 6.25사변입니다. 지난 한세기 동안 일어난 전쟁 가운데 6.25사변처럼 한 전쟁에서 그렇게 많은 나라(16개국)의 젊은이들이 피를 흘리고 희생한 전쟁은 없었습니다. 사실 6.25사변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미국군인이 5만의 사망자를 포함, 14만명이나 사상자, 국군은 60만명사상자, 유엔군은 12명, 북한군은 50만명, 중공군은 90만명이나 사상당했습니다. 그뿐인가요 민간인이 92만명이나 죽었으며, 이재민만 400만명이 생겼습니다. 6.25사변은 승자가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처절하게 같은 민족이 서로를 죽도록 구타한 소모적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원인 제공은 북녘의 붉은 도발이 있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형제끼리 서로 때려서 부상을 당하면 어디가서도 호소도 할 수 없습니다. 비극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휴전 상태입니다. 그런 우리 민족의 가슴에 이제 6.25를 잊으십시오 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잊어버린 세대는 다시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 6.25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하여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

잊지 말자는 겁니다.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잊지 않는 것은 용서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엄청난 축복의 불루오션을 진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영어의 용서하다 라는 단어'forgive'는 잊어버리다 라는 'forget'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얼마나 의미 있는 말입니까?

프랑스 격언에 ‘피해는 모래에, 은혜는 대리석에 기록하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처는 상대방이 먼저 사과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긍휼이 임할 자리를 만드십시오. 억울함을 가슴에 안고, 억울함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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