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와이드교회

담임목사님 칼럼

 

톨레랑스(관용)하라

  • 편집부
  • 조회 : 2546
  • 2015.06.02 오후 03:40

'

헨리 나우웬은 긍휼은 함께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서 우리의 마음을 넓게 확장하는 것이 긍휼이라고 했습니다. 이 긍휼을 다른 말로 하면 관용입니다. 관용(寬容)의 사전적 뜻은 남의 잘못 따위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을 말합니다.

관용에 관한 볼테르의 명구가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

물론 모든 것에 관용하는 것이 다 진리는 아닙니다.

거기엔 그 건수마다 본질을 보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경향성을 모두 수용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정치의 역설로는 히틀러의 경우가 자주 거론됩니다. 관용을 기반으로 삼아서 성립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의 발호를 허용한 결과 나치스의 파시즘이 정권을 잡도록 길을 열어줬다는 역설입니다. 히틀러가 보여주는 교훈은 무조건적인 관용이 아니라 본질적 속성을 파악한 한 방향으로 가는 방향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성경에서 아비의 실수를 가려주었던 셈이 축복을 받고, 함이 저주를 받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은 의도적이지 않는 연약한 실수에 관용을 베푸십니다. 이 관용은 세상을 사는 열린 창이요, 시너지의 통로입니다. 폐쇄와 쇄국은 쇠망의 길을 간 것도 관용 없는 무지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것은 곳곳에 있습니다.

세계 유일의 화교가 정착하지 못한 나라.

지금은 보다 더 나아졌지만 우리는 우리라는 율법적 우상에 갇혀 사실 쇄국의 망령이 아직도 남아있는 지도 모릅니다.

요즘 추사랑으로 TV에 뜨고 있는 추성훈이라는 격투기 선수가 있습니다. 그는 아이러니하게 한국이 버린 유도선수출신입니다.

그 선수는 제일교포 4세로서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일본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후 유도선수 출신의 아버지 영향으로 3살 때 유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유도 실력으로 유도 명문 고등학교로 스카우트되어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태어났고 오랫동안 일본에서만 살았으면서도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일본 유도계에서는 추성훈선수를 일본으로 귀화하라고 권유했습니다만, 그 때마다 아버지 추계이씨는 그에게 할아버지 나라인 한국에서 태극기를 달고 한국인의 기상을 떨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모든 운동선수가 그러하듯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었고, 자신의 조국인 한국의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가슴에 안고 19984월 한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당시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본에서 살았지만 마음은 한국 사람이니까요. 한국 국가대표가 하고 싶다고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으니까 귀화 하지 않고 한국에 왔습니다. 그는 부산시청 팀에 들어가 유도선수로 활동했습니다만, 이번에는 반대로 재일교포라는 이유로 한국 유도계의 텃세와 파벌싸움에 따른 편파판정으로 번번이 판정패하게 됩니다. 낙담과 좌절이 되었지만, 어떠한 말도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판정이 아닌 한판승으로만 승리를 따내자고 결심하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합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2000년 코리아오픈 유도대회에서 준결승, 결승 모두 한판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열린 몽골 아시안 선수권 대회에서도 전 경기를 한판승을 거두며 우승을 하게 됩니다. 그의 미래가 활짝 열린 것 같았습니다만, 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다시 한 번 파벌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특정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대표에 떨어지고 맙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한국에서 활동할 수 없음을 깨닫고, 20019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일본 국적을 취득합니다. 그리고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당당히 우승을 하고, 이듬해에 있었던 아시안게임에 일본대표로 출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그의 유도인생에 회의를 갖게 했던 바로 그 장소, 부산 아시안 게임에 일장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게 되었고, 하필이면 결승전에서 한국선수를 만납니다. 그리고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됩니다.

그 때 당시 한국의 <스포츠조선> 1면에 이런 기사제목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조국을 메쳤다. 그리고 그 밑에 추성훈이 아키야마가 되어, 유도 금이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지금은 그가 격투기선수로 변신하여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 일본에 살 때는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에 살 때는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었습니다.우리는 그를 품을 그릇이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조국을 향한 따뜻한 심장을 담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관용은 승리자의 자세입니다. 관용은 분별과 결단을 요구하는 성숙한 연합입니다.


사실 일본이야기가 요즘 계속 자극을 해옵니다
. 그들이 저지르고도 진정한 역사의 진실 앞에 서지 않는 모습에 격분합니다. 그러나 국가는 본질적으로 국익지향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일본이 양심을 찾으라고 해도 국익만큼 최우선된 가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직된 자세로 대립각만 세우는 것은 소탐대실입니다. 외유내강, 실사구시를 통해 우리도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고, 도광양회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의 정책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힘이 있는 날 그것은 역사 바로세우기는 탄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자동등록방지 이미지
  • 번호
  • 제목
  • 등록일
  • 작성자
  • 조회
  • 1
  •  톨레랑스(관용)하라
  • 2015-06-02
  • 편집부
  • 2547

게시글 확인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삭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

게시글 수정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