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공의가 있음을 믿습니까?
40년 가까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미국의 70대 노인에 관한 뉴스가 작년에 떴었습니다. 크레이그 콜리(71)라는 분인데 여자친구와 그녀의 4살 난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39년여 동안 복역했다가 출소했습니다. 그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배상금으로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 시(市)는 2천100만 달러(236억 원 상당)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그 어떤 금전적 보상으로도 콜리가 겪었을 억울함 등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살인범으로 몰려서 겪어야 했던 수모와 치욕과 고통, 그리고 긴 세월을 어떻게 돈으로 보상할 수 있겠습니까? 체포된 콜리 씨를 위해 그의 부모는 소송비용을 대느라 집을 저당 잡혔고, 그가 감옥살이하는 동안 세상을 떠났습니다. 너무너무 뒤늦었지만 다행히도 사건 현장에서 채취된 DNA가 콜리의 것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고, 이어서 재수사를 통해서 그의 무죄가 입증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DNA 검사 방법이 없었더라면 콜리 씨는 억울하게 감옥에서 그의 생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습니다. 연쇄살인의 8차 살해범으로 잡힌 윤성여씨는 20년 억울한 옥살이 끝에 진범이 잡히고, 자백함으로 그의 무고함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가족은 참 불행을 겪었지만 그는 보상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인권’의 이름조차 거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얼마나 무고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많을까요. 이것이 그대로 덮여지면 공의는 없는 것일까요.
성경에서도 이런 부분에 갈등하고 몸부림한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 세상을 관리해 나가시면서, 마지막엔 공의의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무엇이고 정의는 무엇일까요?
공의(公義, right)란 히브리어 ‘체다카’로 부릅니다. 이것은 선과 악을 정확하게 분별하고 공평하게 그 행위대로 신상필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완전하고 의로운 법을 기준으로 잘못된 것이나 잘된 것을 가감 없이 판단하고 심판하는 행위를 일컫습니다. 법을 정하신 분이 법을 집행하시는 겁니다. 그 법에는 상급과 형벌로 나뉩니다.
우리는 개신교의 이른바 루터의 ‘솔라 그라티아’의 은총에 너무 천착한 나머지 하나님의 공의를 소홀히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셨음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용서를 오용합니다. 악용합니다. 용서를 기회로 죄의 기회를 삼아 내 마음대로 살아놓고, 그분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값싼 은혜’로 여길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죄를 합리화할 도구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은혜의 자유함을 죄의 기회로 바꾼다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 받지 않는 겁니다. 은혜를 헛되이 받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내안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그래서 은총은 자신의 죄를 가리우는데 쓰고, 본심대로 그 은총의 자리를 죄로 채우는 겁니다.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6:2)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6:15)
왜냐하면, 은총은 사랑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에 매여 몸까지 드리는 겁니다. 그 사랑에 울며 나홀로 부르심의 골고다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은 전부를 걸고 던지신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로 우리를 사셨다고 합니다. 값싼 은혜로 취급 받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하십니다. 그래서 내 백성이 백성다워야 합니다. 내 백성이 세상의 거짓의 아비를 따라 하나님을 등질 때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십니다. 국가도 하나님을 떠나면 제국의 왕들을 사용해서 징계하십니다. 개인도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은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고, 다이아몬드가 다이아몬드를 절삭해서 가공하는 것처럼 연단합니다. 자신이 자기의 의에 늘 빠져서 교만하면 나와 같은 완악하고 강팍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내 백성은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내 백성은 참 주인이신 그분의 통치권이 미치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악이 흥왕하고 불의와 부정직이 판을 쳐서 세상을 다 뒤집어 놓는다해도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자신의 공의를 보여주십니다.
물론 완전한 공의는 주님이 심판주로 재림할 때입니다. 그래서 두려워 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합니다.
인간은 공의롭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우리에게 공의가 있어서 구원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 이후에 우리에게 각종 늦은 비와 이른비를 뿌리시고, 좋은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기어코 맺도록 기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신9:4)
그 씨를 받아들이는 강팍함만 없으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최상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불러서 세워가는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공의를 포기할 수 없는 의의 나라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이뤄나가십니다.
“너는 마땅히 공의만을 따르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을 차지하리라”(신16:20)
그러므로 너무 억울해하지 마십시오. 내가 마땅히 누릴 권리를 주를 위해 다 사용하지 못했다면 상급으로 남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조금 더 잘 보세요. 누가 결국은 성공하는가. 부정직과 불의가 성공하는 것처럼 보여도 나중엔 결국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성실한 자가 성취합니다.
“공의를 굳게 지키는 자는 생명에 이르고 악을 따르는 자는 사망에 이르느니라”(잠11:19)
가장 높은 자가 계심을 기억하십시오
“너는 어느 지방에서든지 빈민을 학대하는 것과 정의와 공의를 짓밟는 것을 볼지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높은 자는 더 높은 자가 감찰하고 또 그들보다 더 높은 자들도 있음이니라”(전5:8)
-박인용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