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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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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6.15 오후 04:00

올해를 뒤덮은 유행어는 ‘내로남불’입니다. 정치판에서도 이 말 폭탄의 트렌드는 곳곳마다 사회를 쓰나미처럼 덮었습니다. 선거를 주관하는 선관위는 이 대목에 심각한 위기를 느꼈는지 ‘내로남불’이란 표현을 선거에 쓰지도 못하게 유권해석합니다. 시민들의 정곡에 웃픈스토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내로남불이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의 줄임말이죠. 남이 할 때는 비난하는 것을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입니다.

예를 들면 ‘내가 하면 오락, 남이 하면 도박’, ‘내가 하면 숙달, 운전 남이 하면 얌체 운전’, ‘남은 나쁘고, 나는 착하다’라는 말입니다.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남에게는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잣대의 불균형 자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4월 9일 한국의 정치 상황을 비유하면서 미국의 <뉴욕타임즈>에서도 소개가 되어 국제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비슷한 표현이 ‘이중잣대(double stand)’입니다. 이것은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전반적으로 우리는 ‘내로남불’의 잣대 속에서 상호간에 조금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혐오의 장벽을 더 쌓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심지어는 국가간에서도 이 내로남불은 상대국가 국민들의 복창을 터뜨리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방사능누출에서 보여준 태도가 그것입니다.

1986년 구소련에서 터진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입니다. 사고 직후 일본이 제일 먼저 소련에 요구한 건 ‘신속하고 투명한 정보 공개’였습니다. 중의원과 참의원이 만장일치로 결의했습니다. 8000km 떨어진 곳의 사고였지만 일본은 방사능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때만 해도 일본은 미국을 넘는 G1이 될 것이라는 경제 강국의 자신감이 넘치는 때였습니다. 매일 F-4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기 중 방사능을 채집했고, 여객과 수화물까지 방사능 검사를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유럽에서 들여오던 수입 농수산 식품을 대상으로 강화된 안전 기준을 적용해, 사고 이듬해부터 줄줄이 수입을 금지했습니다.

체르노빌 인근 동유럽은 물론이고, 멀리 프랑스나 스페인, 아일랜드 등 서유럽까지 총 12개 유럽국의 식품 수입을 중단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후 후쿠시마 인근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우리나라를 WTO에 제소하고, 이달 초 방사능 우럭이 잡혔는데도 20일이 지나서야 출하를 금지한 최근의 일본과 명확히 대비됩니다.

1993년, 일본은 다시금 방사능 충격에 휩싸입니다.

러시아가 핵폐기물을 일본 근해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입니다. “바다는 방사능 쓰레기장이 아니다”라면서 일본 여론은 들끓었고, 일본 정부는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하고, 핵폐기물 투기를 즉각 중지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일본은 이웃의 반대를 무릎 쓰고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고 합니다. 후쿠시마 농산물수입금지한 우리에게 WTO 제소를 강행했습니다. 후쿠시마의 방사능물을 정화했다고 선전하며 연예인을 세워 마시는 퍼포먼스를 진행합니다. 그 연예인들은 모두 암, 백혈병 등으로 죽거나 중병에 걸리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내로남불’은 무서운 재앙을 불러오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입니다. 이것이 심해질 때 살맛을 잃습니다. 자기중심의 판단에 판단을 더하면 역겨운 냄새를 진동케 합니다. 사람 사는 맛은 사라집니다. 성숙한 사회는 이것을 남과 나를 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자신도 객관화해서 판단하는 공감대를 갖는 데서 이뤄집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꼰대’라는 말이 있습니다. ‘꼰대’는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를 드러내는 키워드였습니다. 2019년에는 영국 BBC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소개했습니다. BBC는 ‘나만 항상 옳고 남은 틀렸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이라고 주석까지 달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왕성한 ‘참견문화’도 한몫하는 것이라고 보입니다.

선진국이 되는 길은, 더 성숙한 사회가 되어 세계의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선 ‘국뽕’, ‘나뽕’ 만으로는 안됩니다. 때론 냉엄한 국제질서에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국가간의 질서를 정확히 볼 줄 아는 역지사지의 눈이 필요합니다.

다윗이 위대한 점은 자신의 정죄 화살을 자신이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질투와 시기에 사로잡혀 딸도 희생하고, 자기의 사위도 죽이려고 끈질기게 시도합니다. 

그 결과 어떤 비극으로 끝났는지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역지사지’ 이것이 ‘내로남불’을 넘는 하나의 대안입니다. 역지사지는 서로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것의 열매는 ‘공감’입니다.

거기에 협상이 나오고, 협력이 나오며, 함께 하는 시너지가 나옵니다. 공동체 의식이 생깁니다.

이것이야말로 ‘행복의 블루오션’으로 인도하는 신나는 항해입니다.

혐오 사회는 ‘내로남불’의 성벽이 점점 높아가는 사회입니다. 자기애의 성벽은 결국은 고립되어 망하는 길입니다. 길을 여는 자가 살지, 자기애의 성을 쌓는 자는 망하는 법입니다.

국가와 국민, 정당과 정당, 노와 사, 스승과 제자, 상관과 부하 간에 ‘역지사지’의 공통분모가 우리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내로남불’(내가 노할 일이면 남에게도 요구하지 말자)합시다.

- 박인용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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