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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님 칼럼

 

통증을 귀히 여겨라: 성숙

  • 희망짱
  • 조회 : 2820
  • 2017.01.29 오전 08:05

우리의 몸이 좋지 않을 때에 몸은 정직하게 반응을 합니다. 통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아픔 자체를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겠지만 그 아픔을 통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만약 몸에 통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자명합니다. 죽음을 빨리 불러오게 될 것입니다. 건강이 더 악화되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없게 되고 적절한 치료의 기회도 놓치게 되며, 혹 회복 되더라도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충당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통증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필요한 통증은 받아들이는 것이 살 길입니다. 두통에는 두통약 등으로 통증의 스위치를 끈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시스템의 파괴가 기다립니다. 질병 중에는 통증을 잘 느끼지 못하는 장기들도 있습니다. 통증을 느낄 즈음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통증은 그 자체로 회복을 위한 경보입니다. 통증은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황색 사인(sign)입니다.

 

카프만 부인이 쓴 <광야의 샘>이란 이야기 한 토막이 있습니다.

내 책상 위에는 여러 개의 누에고치가 있다. 고치에는 누에나비가 나오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나는 이 작은 구멍으로 큰 누에나비가 나올 수있으리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의 누에나비가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것을 도왔다. 누에나비는 그 작은 구멍에서 긴 시간 동안 온갖 몸부림을 치며 용케도 나오고 있었다.

나는 세상에 첫발을 내딛는 그 가엾은 누에나비를 도와주려고 누에고치를 가위로 오려 큰 구멍을 내주었다. 좁은 구멍에서 나온 누에나비들은 날개를 찢기는 고통을 당했으나, 내가 가위로 크게 구멍을 내준 나비는 쉽게 고리에서 나와 아무런 고통도 없이 아름다운 날개를 퍼덕였다. 나는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작은 구멍을 비집고 나온 나비 한 마리 한 마리씩 날개를 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큰 구멍으로 쉽게 나온 나비는 날개를 푸득거리며 책상 위를 맴돌더니 얼마 후 지쳐서 쓰러졌다. 누에나비는 작은 구멍으로 나오며 애쓰는 동안, 힘이 길러지고 물기가 알맞게 말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내가 어찌 알았으랴.

겪어할 그 통증을 대신 부담했는데 그 생명은 죽은 것입니다. 각자가 짊어져야 할 생존을 위한 통증이 있는 것입니다.

 

노 페인, 노밸류(no pain, no value)!

통증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기독교 최초의 역사 철학자인 신국(City of God)을 쓴 아우그스티누스(354-430)고통의 섭리에 대해 다음 과 같이 말했다.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일하지 않다. 악한 사람은 똑같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을 비방하고 모독하지만, 선한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며 찬양한다. 모든 사람이 무슨 고통을 당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당하느냐가 문제다. 똑같은 미풍이 불지만 오물은 더러운 냄새를 풍기고 거룩한 기름은 향기를 뿜어낸다.

진주조개는 상처를 입으면 고통스럽게 진액을 분비해 상처를 감쌉니다. 그 고통스런 상처가 치유되면서 아름답고 영롱한 진주가 탄생됩니다.

사람도 진주조개처럼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면서 더 나은 나가 됩니다. 이른바 scarstar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아픔은 성숙을 낳습니다. 아픔은 이해를 선물합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은 그런 말입니다. 경험 없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아픈 경험은 배려의 다리인 셈입니다. 그래서 배려심은 성숙이란 말입니다. 성숙이란 말은 이해심이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들 젊어서 고생은 돈 주고도 못산다는 말과 재수를 안 해 본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고통의 긍정적 의미를 사는 말입니다.

사람은 분명 아픔만큼 성숙해지고 많은 경험을 한만큼 이해와 배려의 폭이 넓어져 세상을 바람직하게 살아갑니다. 그러고 보면 배려는 그릇입니다. 사랑과 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전장의 명장군, 패튼장군의 말도 깊은 배려가 아닐까요? 아래로부터 위로의 충성은 강조하는데 왜 위로부터 아래로의 충성은 강조하지 않습니까?

Do 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 others. 남이 네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대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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